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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한양 뉴스, "철학자, 시험과 공부를 이야기 하다" Hit 5468
  • 등록일 2016-01-12 10:34:37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지난 2년간 수능에서는 출제 오류로 인해 복수정답이 인정되면서, 시험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정부는 출제와 검토 과정을 개선하고 더욱 정확한 문제를 만들기 위해 이번 2016학년도 수능부터 출제위원장과 동급인 검토위원장직을 신설했다. 초대 검토위원장을 맡은 민찬홍 교수(정책대 정책)는 수능뿐만 아니라 공직적격성검사(PSAT), 법학적성시험(LEET) 등, 여러 시험을 출제한 논리사고측정 분야의 전문가다. 수능 일주일 뒤, 민 교수를 만나 시험의 개발과 출제에 대해서, 그리고 시험을 뛰어넘어 진정한 지성인이 되는 공부 방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특명, 수능을 오류에서 구하라


수능 시험일인 지난 12일, 민찬홍 교수(정책대 정책)가 수능 출제와 검토에 대해 브리핑했다. (사진 출처: 뉴시스)

 

수능은 대학교수로 구성된 출제위원이 문항을 출제하고,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이 검토위원으로 참여해 문항의 오류나 난이도를 점검하는 과정을 거쳐 출제된다. 하지만 검토위원이 출제위원에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고, 검토 의견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수능 출제오류의 원인으로 꾸준히 제기돼왔다. 민 교수는 “검토위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고 말한다. “검토위원 선생님들은 의견을 내도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움츠리는 성향이 있습니다. 원래 검토위원은 의심할 수 있는 것을 의심하기 위해 있는 자리에요. 그래서 저는 의심스러운 문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도 출제위원과 검토위원의 압박감이 심했던 이번 수능. 검토위원장으로서 민 교수는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 출제된 모든 문항을 직접 점검했다고 한다. “시험이 끝난 후에 오류로 판명되는 문항들은 사실 출제 과정에서 적어도 한 번은 이의제기가 있었던 문항들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능 출제에서는 검토 과정에서 나오는 의견들이 묻히지 않도록, 충분히 문항 점검에 반영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험 출제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어떤 검토의견이나 문항을 주의해서 봐야 하는지 보이더라고요. 문항들이 어떻게 수정되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출제위원들의 긴장감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예년에 비해 조금 어렵게 출제된 이번 수능. 해마다 반복되는 시험의 난이도 논란에 대해서도 민 교수는 “시험의 난이도는 출제위원의 의견이 아닌 교육부 정책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응시자의 평균 점수는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하나라도 틀리면 1등급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습니다. 사실 시험을 어렵게 내려고 하면 충분히 어렵게 낼 수 있어요. LEET같은 시험은 변별력 확보가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수능에서는 1등급 컷이 100점이어도 안되고, 그렇다고 만점자 비율이 1퍼센트 미만이어도 안되는 제약이 있어서 미세한 난이도 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등급 컷으로 예상되는 점수 분포가 가장 이상적인 난이도라고 할 수 있어요.”


철학도, 최고의 논리학 선생님이 되다


민찬홍 교수는

 

민 교수는 시험 출제 전문가이기 이전에 철학자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철학 공부가 꿈이었다는 민 교수. 철학을 공부한다는 꿈은 인간이 이룬 중요한 이론적 성취를 모두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공부가 너무 많았어요. 물리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공부할 수 있는 학문이 철학밖에 없더라고요. 어떤 분야든 관심을 잃지 않고, 학부 전공자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추면서 철학을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철학과 학부 시절에는 수리논리학에도 관심이 있어서 수학과 교수님들도 많이 찾아갔어요. 그런데 국내에서 수리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극소수여서, 제가 수리논리학 논문을 쓰면 읽어 줄 사람이 대한민국에 다섯 명도 안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과학철학, 인지과학, 심리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 온 민 교수는 “수능 언어영역(현재의 국어영역) 출제에 참가한 후부터 모든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비판적 사고 훈련의 전문가가 됐다”고 말했다. 분석철학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민 교수는 현재 우리대학에서 논리적 사고, 분석과 비판, 칸트와 롤즈의 사상을 강의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민 교수의 수업은 쉽지 않기로 유명하다. 한 과목에서는 학생들이 논리를 세워 민 교수를 설득시켜야 하는 과제가 부여되기도 한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타고난 언어적 재능에 따라 성적이 나오는 것 같다는 의미에서 민 교수 과목의 성적을 ‘모태학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생들이 모태학점이라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저도 정책대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글을 분석적으로 읽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논리력이라는 게 짧은 시간 공부해서 실력이 늘진 않아요. 제 수업에서 고생을 많이 한 학생들이 나중에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호기심, 지적 성장의 원동력


민 교수는 학생들에게 좋은 책을 읽으며 지적 훈련을 꾸준히 할 것을 당부했다. “롤즈의 정의론이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같은 명저를 많이 읽어야 해요. 제일 이상적인 건 책의 내용을 다 외우는 거에요. 한 단락을 읽으면 책을 덮고, 그 단락의 내용이 무엇인지 스스로 요약해보세요. 한 장(Chapter)을 읽으면 그 내용을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책 여백에 내용을 적으면서 읽어도 좋아요. 궁극적으로는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여러분의 설명을 듣고 책을 읽은 것처럼 내용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에요. 글을 분석적으로 읽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도 어렸을 때부터 그런 방식으로 책을 읽는 교육을 받아서 위대한 사상가가 된 거에요.”


강한 지적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책을 탐독하는 것이 민 교수가 말하는 지적인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거롭더라도, 다른 즐거운 일들을 조금 뒤로 미루더라도, 오랜 시간 생활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다 보면 엄청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 “제가 관여해서 만드는 LEET나 PSAT 같은 시험들은 결국 대학생활 4년 동안 지적인 훈련을 충분히 했는지를 평가하는 거에요. 하나도 준비 안 하다가 서너 달 공부한다고 해서 성적이 잘 나올 수가 없죠. 고생을 좀 해야 돼요. 하지만 유념할 것은 다른 사람의 재능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거에요. 여러분도 언젠가 더 큰 그릇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사진/이명지 기자
jk618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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